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의 초보자들은 문학적인것과 비문학적것을 혼동하지 말기...
2017년 07월 24일 04시 33분  조회:2118  추천:0  작성자: 죽림

문학의 세계 / 이승훈


문학이 노리는 것도 크게 보면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 함에 있다.

그러나 시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글과 비문학 적인 글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많은 시의 초보자들이 시를 쓰면서 저지르는 오류 가운데 하나는 문학적인 글과 비문학적인 글을 혼동하는 일이다.

모든 글은 언어를 수단으로 한다. 그렇지만 언어로 표현된 모든 글을 문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문학적인 글과 비문학적인 인 글을 구별하는 데에는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겠 지만, 이 자리에서는 크게 방향, 목적, 범주, 평가라는 네 가지 기준에 의해 살펴보기로 한다. *④ 

첫째로 비문학적인 글의 경우 언어가 외부세계를 지향함에 반하여 문학적인 글의 경우에는 언어가 언어 자체, 곧 자율적인 세계를 지향 한다.

모든 글은 언어로 이루어지며, 언어는 기호 sign에 지나지 않다.

기호란 무엇인가를 대신한다는 특성을 나타낸다. 이를 테면 "산"이 라는 언어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인▲을 대신한다.

따라서 "산" 이라는 언어는 기호로서의 특성을 나타낸다. 모든 언어는 그런 점에서 그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소유하게 마련이다.

또한 기호로서의 언어 는,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가 지적했듯이, 소리심상 signifiant과 개 념 signfiet으로 이루어진다.*⑤ "산"이라는 언어의 경우 소리심상은 발음할 때 나는 [S∧N(산)]이며, 개념은 지시대상인 ▲이다.

전자를 기호의 물질성, 후자를 기호의 의미라고 한다면, 모든 언어가 의미를 띨 수있는 것은 개념을 환기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을 소유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호로서의 언어는 모두가 이렇게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어 떤 대상, 곧 지시물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기호로서의 언어는 외부세 계의 대상이 아니라 기호로서의 언어 자체를 지향하는 수도 있다. 미 국의 문학이론가 프라이는 언어적 기호의 이러한 두 방향에 대해 언 급하면서, 기호가 외부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원심적 centrifugal 방향, 기호가 기호 자체를 지향하는 것을 구심적 centripetal 방향이라고 부 른 바 있다.

*⑥ 그에 의하면 전자는 언어의 축어적 국면 literal phase, 후자는 묘사적 국면 descriptive phase에 해당된다. 축어적 국면에서 언어, 이를 테면 하나의 낱말을 대할 때 우리는 그 언어가 지시하는 지시물 및 낱말과 낱말의 인습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계속 외부세계 를 향한다.

그러나 묘사적 국면에서 하나의 낱말을 대할 때 우리는 그 낱말의 지시물보다는 그 낱말이 글 속에서 만드는 보다 커다란 언어 패턴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킨다.

이를테면 "산"이라는 낱말의 경우, 묘 사적 국면에서 우리는 페이지에 기록된 기호의 물질성, 곧 시각적 효 과, 그 기호를 읽을 때 나오는 청각적 효과, 나아가 그 음이 환기하는 이미지나 기억 등에 관심을 둔다.

이러한 효과나 이미지는 모두가 허 구의 세계에 속하며, 그것들은 상상력에 의해 드러난다.

모든 문학적 인 글은 궁극적으로 이렇게 언어기호가 구심적 방향으로 움직이며, 비 문학적인 글은 이와는 반대로 원심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

간단히 그 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 
← sing → → sing ← 
↓ ↑ 

비문학적인 글 문학적인 글 


둘째로 비문학적인 글의 제1 목적이 정보를 전달하거나 어떤 사실 을 논중함에 있음에 비해 문학적인 글의 제1 목적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함에 있다.

비문학적인 글에 속하는 신문기사나 과학논문을 생각 해 보자. 신문기사가 노리는 것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전달이며, 과학논문이 노리는 것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와, 그 사실에 대한 논리적 증명이다.

그러나 문학적인 글에 속하는 시가 노리는 것은 그 러한 정보전달이나 논증이 아니다. 이를테면 김소월의 「山有花」에 나 
오는 

山에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라는 시행에서 시인이 노리는 것은 산에는 봄, 여름, 가을에 꽃이 핀 다는 사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함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이 시에 서 독특한 하나의 심적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 그러한 창조는 

山에 
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같은 시행이 보여준다.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다는 말은 시인과 꽃과 의 거리에 대한 어떤 객관적 정보도 드러내지 않으며, 또한 어째서 그 렇게 혼자 피어 있는가에 대한 논리적 증명도 하지 않는다.

이 시행은 외롭게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에 대한 시인의 정서적 반응과, 그 반응 을 토대로 하여 전개되는 상상력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山有花」에서 노래되는 세계는 이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독특한 공간이 다. 그러나 문학적인 글이 창조의 세계를 노린다고 해서 어떤 사실에 대한 정보나 논증에 대해 전적으로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제 1목적이라고 쓴 것은, 이러한 목적이 지배적임을 뜻한다. 


세째로 비문학적인 글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신문기사나 과학논문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고, 문학적인 글의 대표적 유행으로는 시, 소설. 희곡 등을 들 수 있다.

원래 문학 literarure 이란 용어는 서양에서는 문자 letter 라는 낱말을 어원으로 하고, 이 문자라는 낱말은 잎사귀 litter 라는 낱말을 어원으로 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잎사귀에 글씨를 새겼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문학은 광의로는 글로 된 일체 의 책을 의미한다.

그렇던 것이 오늘날처럼 문학적인 글과 비문학적인 글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소위 창조의 개념 혹은 예술의 개념이 제대 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의 개념을 어디 에 두느냐에 따라 시대적으로 문학적인 글의 범주는 달라질 수 있다. 모울톤같은 문학이론가는 역사, 철학,철학, 웅변도 문학적인 글의 범주 에 포함시킨다.*⑦ 


네째로 비문학적인 글의 평가기준과 문학적인 글의 평가기준은 다 르다.

비문학적인 글의 가치를 따지는 데에는 유용성. 명백성. 실증성 이 기준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문학적인 글의 가치를 따지는 데에는 이와는 다르게 통일성. 다의성 심미성을 기준으로 한다. 신문기사가 신문기사로서 훌륭한가 훌륭하지 못한가를 따질 때에는 그 기사가 우 리들의 현실생활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 그 기사의 문체가 명백한가, 그 기사가 다루고 있는 정보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에 관심 을 둔다.

과학논문의 경우에도 그렇다. 이를테면 어떤 식물학자가 "진 달래꽃"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하자. 그의 글이 논문으로서 가치를 띠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진달래꽃은 진달래의 꽃을 뜻하며, 진달래는 철쭉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관목으로서 꽃은 타원형으로 톱니가 없고, 4월에 엷은 홍색꽃이 3~5개씩 다섯 갈래로 피며 한국 각지 및 일본과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고 써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글이 고학논문으로서 흠 잡을 구석이 없는 것은 이 글이 우리의 삶에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고, 글의 문체가 명백하고, 글의 내용이 객관적 진리를 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의 경우에는, 이를테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읽을 수 있듯이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처럼 "진달래꽃"에 대한 객관적 정보, 곧 어떤 실증성도 드러나지 않고, "진달래꽃"의 의미가 명백하지도 않고, 또한 이 글이 우리의 삶에 실용 적 가치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시가 가치 있는 것은 한 편의 시로서 통일성을 소유하고, "진달래꽃"의 의미가 여러가지로 나타나며, 독특한 미적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통일성. 다의성. 심미성이 평가 의 기준이 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570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2022-06-08 0 2045
1569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 남영전 2021-12-20 0 1698
1568 [문단소식]- 훈춘 김동진시인 "풍경소리" 울리다... 2021-09-07 0 1701
1567 [시공부사전] - 담시(譚詩)? 2021-05-29 0 2026
1566 하이퍼시 명언 21 / 최흔 2021-05-25 0 1933
1565 하이퍼시 명언 20 / 최흔 2021-05-25 0 1928
1564 하이퍼시 명언 19 / 최흔 2021-05-25 0 1834
1563 하이퍼시 명언 18 / 최흔 2021-05-25 0 1875
1562 하이퍼시 명언 17 / 최흔 2021-05-25 0 1802
1561 하이퍼시 명언 16 / 최흔 2021-05-25 0 1847
1560 하이퍼시 명언 15 / 최흔 2021-05-25 0 1893
1559 하이퍼시 명언 14 / 최흔 2021-05-25 0 1739
1558 하이퍼시 명언 13 / 최흔 2021-05-25 0 1931
1557 하이퍼시 명언 12 / 최흔 2021-05-25 0 1931
1556 하이퍼시 명언 11 / 최흔 2021-05-25 0 1891
1555 하이퍼시 명언 10 / 최흔 2021-05-25 0 1900
1554 하이퍼시 명언 9 / 최흔 2021-05-25 0 2010
1553 하이퍼시 명언 8 / 최흔 2021-05-25 0 1829
1552 하이퍼시 명언 7 / 최흔 2021-05-25 0 1709
1551 하이퍼시 명언 6 / 최흔 2021-05-25 0 1913
1550 하이퍼시 명언 5 / 최흔 2021-05-25 0 1849
1549 하이퍼시 명언 4 / 최흔 2021-05-25 0 1849
1548 하이퍼시 명언 3 / 최흔 2021-05-25 0 1910
1547 하이퍼시 명언 2 / 최흔 2021-05-25 0 1970
1546 하이퍼시 명언 1 / 최흔 2021-05-25 0 1880
1545 토템시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김룡운 2021-05-24 0 1802
1544 토템과 민족문화 / 현춘산 2021-05-24 0 1704
1543 남영전 토템시의 상징이미지/ 현춘산 2021-05-24 0 2056
154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시인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5-10 0 2132
1541 시인 최기자/ 소설가 허련순 2021-05-03 0 1910
1540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6 2021-03-02 0 1964
1539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5 2021-03-02 0 2087
1538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4 2021-03-02 0 1849
1537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3 2021-03-02 0 2231
1536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2 2021-03-02 0 2153
1535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1 2021-02-19 0 2242
1534 [시공부] - 투르게네프 산문시 2021-01-18 0 2405
1533 [시공부] - 김기림 시인 2021-01-18 0 2751
1532 [타산지석] - 늘 "이기리"... 꼭 "이기리"... 2020-12-28 0 2624
1531 토템시/ 범= 남영전, 해설= 현춘산(8) 2020-10-10 0 2510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